청년, 길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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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어 보이면 일단 감행하고 보자는 게 단순명쾌한 탐방의 비책이다. 전날에 이어 수여선 여행을 계속 이어가기 위하여, 오후가 시작될 무렵 기흥역으로 와 다시 출발했다.

신갈을 떠난 수여선 열차는 지금의 국도 42호선 길가를 따라서 나란하게 달렸을 것이다. 처음엔 기찻길이 있던 자리가 아파트단지에 덮여 드러나지 않다가, 기흥역에서 구갈지구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약 400미터에 걸쳐서 철도부지를 붙잡고 열을 지은 건물의 모습이 관찰된다.

구갈지구로 뛰어들면 얼마간 구체적인 흔적을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 길가에 인접한 아파트 단지들을 차례로 관통하며 어정마을로 나아갔을 것이다. 아마도 예전에는 자연마을이었을 어정. 지금은 두 신도시 사이에 어정쩡하게 끼어버린 탓으로, 양쪽의 영향에 휩쓸리듯 이 동네도 많이 개발되어 주변을 닮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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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역터에 들어서기 직전 수여선은 노반을 뭉갠 택지지구를 빠져나온다. 철도부지에 들어선 조립식 건물.

어정사거리에서 마을 안쪽을 들여다 본 모습으로, 예전에는 건널목이 있던 지점이지 않을까 싶었다. 수여선 어정역터는 'ㅁ'자형으로 들어선 큼지막한 물류창고가 차지하고 있었다. 고물상 너머로 보이는 건물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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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창고 안마당을 들여다본 모습.

어정역터와 길 하나를 두고 떨어져 있는 옛 농협창고. 역을 발차하여 용인으로 향하던 열차가 바로 스쳐가던 자리에 있다. 옆에서는 어정사거리로 나가는 도로를 따라 실개천이 흐르고 있어 여기에 미니철교 흔적이 있었다고 하나, 이미 사라졌다.

여기서 동백지구에 부딪치기 전까지는 짧게나마 2차선 도로로 바뀐 수여선을 만날 수 있다. 어정초등학교를 부드럽게 감싸며 지나가는 곡선부 선형이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보강공사를 겪고 있는 초등학교의 모습이 한쪽으로 보인다. 왼쪽에서 흘러나와 큰길과 직각으로 만나며 단절되는 길이 옛 수여선이다. 이윽고 나타나는 풍경은 인공호수와 동백신도시로, 협궤철길은 다시 간 곳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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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공원. 원래는 수여선 기찻길이 철교를 드리운 보통 너비의 하천이 흘렀으나, 이제는 택지개발로 인해 묻히게 된 조그만 복개천들이 모여드는, 그리고 홍수 시에 물을 담아두는 인공호수이다.

수여선은 동백지구가 들어선 지역을 위아래로 길게 관통하며 이어졌다. 사진 속의 길, 신도시 내의 '동백중앙로'가 옛 기찻길의 루트와 가장 유사하다.

동백동의 가장자리에 이르러 메주고개가 버티고 있다. 이 고개를 넘어야 용인시내 중심부로 들어갈 수 있다. 미리 고지도를 한참 노려보고 현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은 결과, 사진 속 지점이 땅밑에 터널 입구가 묻힌 데라고 결론짓는다. 조금 전의 동백중앙로를 타고 쭉 내려오다 보면 주거단지가 끝나고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형 공장이 나타나는데, 그 건물 뒤 안으로 들어서면 나오는 곳이다. 산자락을 맞닥뜨리고, 옆으로는 경전철 선로가 지나는 지점이다.

메주고개를 넘는 길. 경전철 선로가 바로 눈높이랑 같아졌다. 수원을 오가기 위하여 꼭 넘어야 했던 고개. 옛 42번 국도가 넘나들었고 수여선 기찻길도 공략해야 했던 곳. 급경사로 인해 메주 고개길은 수여선 기찻길에서도 가장 지나기 힘들었던 구간이었다. 특히 수여선에 증기기관차가 견인하는 열차가 다니던 시절에는 밑에서부터 탄력을 쌓아가며 올라오던 열차가 힘이 조금만 모자라도 고개를 넘지 못하고 다시 굴러 내리기 일쑤였고, 물과 석탄을 보충하여 지루한 도전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다는 당시 일화가 구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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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겹게 넘나들던 고개. 메주고개의 정점에 뚫려 있던 협궤터널은 오래 전에 매몰되고, 단지 설화에 가깝게 들리는 그때의 추억담만이 전혀 내려올 뿐이다. 기찻길의 위치를 소상히 아는 어르신을 만났다. 고개 너머 터널의 반대쪽 출구는 현재 길이 막혀 있어 가까이 가기 어려운 미곡처리장이 들어서면서 그 여파로 묻혔을 거라고 한다. 산자락과 미곡처리장 부지가 서로 맞닿는 경계 아래 터널이 파묻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정말 거기서 나와 삼가동에 이르기까지의 수여선이 그리는 선이 분명하게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터널을 등진 열차는 경기장이 지어지는 현장을 통과, 도로를 건너 지금 서 있는 곳으로 온다. 그 방향을 따라서 사진 속 온실이 놓였다.

다음은 수월해진다. 거짓말처럼 노반이 마을길로 남아 있었다. 노반은 온실을 떠받치기도 하고, 고르게 일궈진 농경지가 되기도 하며 앞으로 쭉 뻗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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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지점에서 미니철교의 흔적이 나타난다. 구체적인 시설물 흔적을 출발 이래 이제서야 처음으로 보게 된다.

사라진 기찻길의 뚜렷한 흔적인 장방형 농지. 기찻길의 방향을 따라서 이랑과 고랑이 일궈졌다.

눈앞에 버티고 선 아파트를 귀퉁이로 찌르고 통과한 협궤철길은 또 하나의 미니철교를 넘는다. 바깥에서 잘 보이지 않는 주택가 안쪽에 이런 비밀스러운 게 있었다니. 다소 놀라운 느낌이었다.

부드러운 흙이 남김없이 녹아내리니 콘크리트 구조물 안에 박아넣은 자갈들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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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랑은 꽤 좁고 깊게 파여 있다. 컨테이너를 교묘하게 받치고 있는 교대. 귀중한 흔적인 것이다.

기찻길은 빌라를 지나고, 한 뼘의 공터를 건너뛰어 주택이 연이어 들어선 자리를 따라 이어진다.

산자락 밑을 감아 도는 곡선이 끝나고, 열차는 금학천을 비스듬하게 건너간다. 정면으로 보이는 교대 한 쪽만이 혼자 남아 교량이 있던 자리임을 알린다. 다리가 연속으로 두 개. 금학천을 건너는 것과 그 직후로 짧은 지천을 건너는 것이 붙어 있었다는데, 오늘날 볼 수 있는 이 외짝의 교대는 지천을 건너던 미니철교에 딸린 것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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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만나게 되는 정거장, 삼가역터는 국도 42호선과 금학천, 용인시청 진입로로 둘러싸인 삼각형 모양의 땅에 위치하였다. 지금은 음식점과 텃밭, 화물자동차의 주차장이 뒤섞여 있는 풍경이다.

머리 위로 용인경전철 고가가 지난다. 경전철 노선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삼가역보다 시청역이 수여선 삼가역터에 더 가깝다. 삼가역을 떠나 잠시 달리면 조밀하게 형성된 주택가로 접어들고, 그렇게 구시가지 한복판으로 다가간다.

용인역터로 널리 알려진 GS슈퍼마켓. 주변은 변함없이 활기로웠고, 하천 산책로에서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여유가 흐르고 있었다. 길다면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 돌이켜보면 금방 온 것 같기도 한 수원~용인의 수여선 산책. 도시화의 바람이 직접 불어 닥친 지역으로서 직접 가서 걸어보는 것이 의미가 무색하리만치 변해버린 곳도 많으나, 더는 오지 않는대도 미련이 남지 않을 만큼 확실하게 돌아보고 밝혀두는 것도 좋으리란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