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길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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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수여선을 따라가면서 지역별로 다양한 옛길의 특색을 느낄 수 있었다. 수원~용인에 걸친 지역에서는 과거 협궤철도 연선의 도시화된 모습을 보았고, 양지를 거쳐 오천에 이르는 동안에는 숲과 물이 어우러져 운치 있었을 그때의 차창 밖 풍경을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원래는 철도노반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인상 깊은 곳이었다가 지금은 국도 확장으로 모두 잃고 다소 무미건조하게 전락해 버린 오천~이천 구간을 따라서 이천 시내까지 들어왔다. 앞으로 남은 이천~여주 구간은 넓게 트인 곳이 많고, 순한 지형을 따라 도로화된 기찻길이 명료하게 쭈욱 이어지기 때문에 감흥이 크고 장거리 여행이 실감날 만한 구간이다.

이천에 입성한 기차는 오늘날 터미널 뒤편의 여관이 늘어선 구역을 지나, 중심도로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평행하게 달려 남북방향으로 시가지를 관통하였다고 한다. 지도상으로는 큰길에서 한 블록 정도 떨어진 골목길과 거의 같은 루트를 보였던 것인데, 그 중간쯤인 분수대오거리를 스치는 지점에 이천역이 있었다. 동그란 교차로가 바로 분수대오거리로, 지금도 이천시내에서 가장 갈래가 많고 복잡한 교차로이자 도시의 심장부이다.

이천역 부지를 나눠가진 것은 지금의 농협과 하나로마트, 그리고 주차장 등이다. 꼬마기차 시절에 아마 역전(驛前)이었을 오거리와 역터 사이의 거리는 100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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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역과 수여선에 대해 간단히 일러주는 조그만 비석도 찾을 수 있었다.

이제 수여선 기찻길이 놓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흔한 주택가를 걷는다. 이미 이야기했듯 이 길은 남북방향의 간선도로에서 한 블록 떨어져서 나란히 이어진다. 예전에는 기차가 다녔음을 암시하는 길 이름이 붙어있었지만 현재는 227번이라는 그저 행정상으로는 편할지 모를 번호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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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철도부지를 잘 따라가던 길이 텃밭이나 건물 따위의 장애물을 만나면서 잠시 옆으로 물러났다가 도로 자리를 되찾기도 한다.

무촌역터 추정지. 그렇게 거대한 고속화도로에 집어삼켜진 채로 수여선은 이어지고, 오늘날 이천시 교외의 부발읍 무촌리에 있었던 무촌역에 다다른다. 옛지도를 열심히 대조해 보지만 철길의 선형 위에 그대로 도로를 덮어씌웠기 때문에 무촌역터 역시 대부분 여기에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죽당역 추정지. 당시 거리표를 통해 추정해 보면 기차는 죽당교를 건너기가 무섭게 죽당역에 잠시 들렀던 것으로 나오는데, 역시나 흔적은 일절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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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수여선 부지를 따라 덮어 만든 2차선이다. 얼마 가지 않아 집이나 농장은 자취를 감추고, 시야가 넓어진다. 멀리까지 보이고, 경사와 굴곡이 유순하기 때문에 과거 기찻길을 활용해서 만든 길은 걷거나 드라이브 코스로 좋은 경우가 많다.

여주로 진입하는 경계까지는 긴긴 내리막길을 이루는데, 거리를 두고 길을 옆에서 바라본 사진이다. 지형은 나지막한 구릉지와 그 사이사이에 길게 펼쳐진 들판이 주를 이룬다.

시간이 40여 년이나 흘렀건만 철둑의 높이는 당시 그대로였다. 지금도 기차가 달리던 시절과 같은 위치에서, 그때의 차창 바깥과 같은 풍경을 같은 구도로 관망할 수 있다.

저지대의 농경지를 뒤로 하고 지면이 철길 높이만큼 올라왔다. 수여선은 큰 파동을 가지고 물결치듯 완만한 곡선을 따라 계속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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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은리부터 다른 곳에서 오는 길과 만나면서 도로 넓어진다. 그러고 나면 수여선에서는 보기 드문 긴 다리를 통해서 강을 건넌다. 매류역으로 다가서기 위한 관문이다. 2002년 7월 준공된 밋밋한 도로용 교량이 철교가 있던 자리에 그대로 대체되었다. 기존의 철교는 지역민들의 추억 속에만 남았을 뿐 흔적은 기대할 수 없지만, '매류철교'라는 지명 하나만은 구전으로, 혹은 향토지에 실려서 앞으로도 상당한 세월 동안 후세에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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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류철교의 과거. 수여선이 폐지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보도교처럼 쓰이는 철교의 모습이다.

삼거리를 지나 역촌마을 그리고 역전슈퍼로 익히 알려진 매류역터에 도달했다.

평온하고 고즈넉한 수여선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극대화하면서 마무리 짓는 매류~여주 구간이다. 매류역터와 역촌(驛村)마을은 철도정거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본보기 같은 장소다. 이곳이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고 앞으로도 더 높게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저 기차역을 암시하는 지명이 있어서라기보다도, 철도의 지위변화 혹은 주변 교통의 흐름변화에 따라서 정거장에 얽힌 한 지역이 변해온 과정이 명료하게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기차역이 있던 매류2리를 살펴보면 철길이 지나던 자리는 상대적으로 높은 데 있고, 지대가 낮은 정거장의 북쪽 땅에 역촌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평지에서 아랫마을을 가로지르는 작은 길(매류1길)이 예전에 생기가 돌던 마을 중심가이며, 여기서 수여선으로 들어오는 길은 매류역 진입로, 그리고 이 길이 과거의 수여선 철길과 직각으로 만나는 교점이 바로 기차역사가 서 있던 자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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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한번 크게 들이쉬고 한 달음이면 전부 돌아볼 수도 있을 만큼 조그맣고 아담한 마을. 그 심장에는 단연 기차역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을 통과하던 수여선 철길은 2차선 포장도로로 바뀌어 형태는 달라도 여전히 바깥을 향한 통로 역할을 맡고 있고, 매류역 역사(驛舍)가 헐린 자리는 정거장에서 이름을 딴 '역전슈퍼'가 차지했다.

서로 나란히 있는 구멍가게 그리고 보건소 사이에 난 길이 예전에 기차역으로 들어오던 진입로에 해당한다. 몇 십 년 전 어느 날 기차를 타고 매류역에서 내린 사람들은 역사를 등지고 이 길을 따라서 마을로 빠져나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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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회관 옆에는 마을 꾸미기 사업으로 세워진 벽화를 볼 수 있다. 수여선 기차역과 함께 당시 역촌마을의 전경을 담은 그림으로, 실제 북쪽과 남쪽을 뒤집어 그려서 역터 남쪽에 접한 구릉지가 위쪽에 표현되어 있다. 매류역사에 딸린 부속건물이나 역 앞 한 편에 있는 우물처럼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은 섬세한 묘사였다. 무엇보다도 초가며 기와를 얹은 수많은 가옥들 그리고 북적이는 시장 거리가 인상 깊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뒷면에도 벽화가 있었다. 역에 들어온 증기 협궤열차를 재밌는 구경거리 보듯 하는 아이들 그림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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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여선 철길이 동서축의 주요한 교통로 기능을 하던 때에 기찻길은 곧 물자가 흐르고 문화적 소통의 매개가 되는 큰 흐름과도 같았을 것이다. 가게와 주점이 거리를 따라 늘어서고 정기적으로 5일장이 꼬박꼬박 열렸으며, 지서나 우체국 같은 공공시설이 지난날 저잣거리였던 마을 아랫길에 들어서는 등 매류역의 역촌마을은 주변보다 먼저 외부의 문물이 들어오고 그것을 주변에 퍼뜨리던 지역중심지의 성격이 다분히 있었다. 마을에 끊임없이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핏줄과도 같던 수여선에 열차가 끊긴 이래 이곳이 번영을 구가하던 시절을 추억에만 묻어두고 침체할 수밖에 없었음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철길이 도로로 포장되긴 했지만 더 이상 이 길은 주요한 교통흐름을 소화하는 맥이 전혀 아니었고, 그저 시골길 가운데 하나로 전락해 버린 수여선 옛길처럼 역촌마을도 주변의 작은 농촌마을과 다를 것 없는 곳이 되었던 것이다.

바뀐 옛길에 걸맞게 이제는 시내버스가 매류리와 바깥을 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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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류역에서 2.6km의 단거리 주행을 하고 나면 광대리역에 이르게 된다. 여타 역들과 달리 수여선 개업 때가 아니라 1966년 7월에 처음으로 문을 연 광대리역은 주변 마을의 교통편의를 위해서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며, 조그만 임시승강장 형태로 영업하다가 불과 6년여 만에 사라져야 했던 곳이다. 영업거리표에 따르면 광대리역이 있던 곳은 하얀 교회가 있는 지금의 광대사거리이다.

방향을 바꾸어 여주시내를 바라보게 된 수여선은 가남리 쪽에서 오는 차량 행렬과 섞여서 연라리의 한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바로 이 근처에 연라리역, 혹은 신대역이라고 불렸던 간이역이 위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동네 어르신이 알려주신 신대(연라리)역터의 모습이다. 종착역인 여주 직전에 들르던 간이역으로, 역목이라고 보아도 좋을법한 가로수가 두 그루 사이좋게 서 있는 것이 유일한 특징이라 하겠다.

이제 기차는 여주역만을 남겨두고 있다. 연라리역을 출발한 지 얼마 안 되어 연라초교를 지나칠 무렵 수여선 철길은 지방도 옆길로 빠지는데, 이 구간도 어김없이 마을길로 남아있다. 이윽고 여주시가를 피해서 돌려지은 큰 우회도로를 굴다리로 넘어가고, 월송리, 여주향교를 차례로 지나서 점차 여주시내에 가까워진다.

여주시가지로 뛰어들기 직전에 기차가 건너던 상리철교는 새로 놓은 다리에게 터를 내주었다. 신설된 도로교는 물을 짧게 건너려고 그랬는지 옛 철교랑은 각도가 사뭇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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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여선 열차의 종착역인 여주역은 유감스럽지만 주택지에 덮여서 흔적을 찾을 수가 없으며, 단지 지금의 군민회관에 자리했다고만 알려진다. 비록 현재는 남은 게 없지만, 수운교통을 밀어내고 지역사회에 큰 존재감을 드러내며 등장하여 영동고속국도에 배턴을 넘겨주기까지 약 40년간 기적소리를 울렸던 곳이다. 수여선 역시 개량 계획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1930년대에는 점동면 방면으로의 부설연장 허가가 있었던 바 있으며, 60년대에는 전체를 표준궤로 개축한 다음 중앙선 구둔역까지 연장하려는 계획이 잠시나마 따랐다. 하지만 당장에 매년 발생하는 막대한 적자에서 눈을 돌릴 수는 없었고. 결국 시기상 따라야 했던 수순대로 수여선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알아본 바로는 여주역에 딸린 창고가 몇 해 전까지 남아있었다고 들었다. 단층 규모의 건물로 1950년대 양식이 잘 드러난다는 이 창고는 당시의 여주역과 직접 관련된 마지막 남은 흔적이었다. 산책하기 알맞은 아담한 도시 크기에 유량이 풍부한 남한강이 있어서 답답하지 않으면서도 차분한 분위기가 흐르는 이곳 여주. 그래서인지 수여선 여행이 끝나고 나서도 몇 차례인가 더 발길이 이끌렸었다. 여러 달 동안 탐방과 보강여행을 행했던 수여선 여행은 이것으로 끝이 났다.

수여선이 지나는 용인, 양지, 이천 등은 그간 도시화 지역의 범주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다가 최근에 가장 변화가 빠른 경기내륙 지역으로, 알다시피 권역별로 옛 협궤선을 조금씩 대체하는 철도가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이것들이 도로에 몰렸던 역할 비중을 분담하는 정도를 넘어서 한 세대 전의 수여선을 뛰어넘는 새로운 흐름을 이 지역에 불러올 수 있을지가 앞으로 기대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