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길을 떠나다

Blog Single

시간이 남았는데 멀리 떠나기에는 여의치 않을 때, 도시 안에서 이리저리 산책을 다니곤 했다. 날을 골라 한나절이고 진종일이고 거리를 쭉 걸어 나가며 여러 지역을 지나다 보면, 머릿속이 개운하게 씻겨 내려가고 새로운 생각이 샘솟을 자리가 생기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2013년에는 특히 수원이나 안양, 안산, 과천같이 거처에서 가깝던 경기 남부의 여러 도시들을 주로 산책했는데, 수여선을 한 차례 더 걸어도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을 붙잡아 실제 행동으로 거침없이 옮겨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다. 그리하여 2013년 10월에 하루, 2014년 3월에 이틀, 그리고 6월에서 하루를 골라 수원에서 이천까지를 대대적으로 새롭게 다시 탐방했다.

흔히 한국철도는 한반도 내에서의 노선끼리 서로 연계가 잘 되기를 우선하기보다는 일본과 한반도, 만주를 시간적‧공간적으로 밀착시켜 같은 경제권으로 포섭하려는 목적을 앞세웠기에, 남북 종관선 위주로 발달했고 그 끝을 항만에 직접 접속시킨 경우가 많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런 점에서 수여선은 단연 눈에 띄는 기찻길이다. 수인선과 함께 동서축 철도선을 이루었고, 표준궤로 사업면허를 얻었으면서도 실제로는 협궤로 놓였던 수여선.

수여선이 개설된 배경에는 경기도의 곡창지대에서 난 곡물을 쉽게 반출하려는 목적말고도 남한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여주까지 실어온 물자를 철도로 환적해서 수원 등지로 운송 가능하다는 것이 주요한 이유였다. 따라서 경기뿐 아니라 중부내륙 거의 전역을 사업의 간접 영향권으로 삼을 수 있었고, 역으로 인천 등지에서 받아온 수입품이며 공산품을 내륙으로 실을 수 있는 이점 등이 유효하게 고려되었다. 한강 중상류의 충주, 원주(문막)와 같은 중부 내륙의 지방 중심지에서 실어온 물자를 여주의 하항에서 철도로 옮겨 싣던 연계수송은 1940년대 중앙선이 구축되기까지 활기를 보였다고 한다. 또 육상교통의 주도권이 도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급속히 쇠퇴하여 사라진 기찻길이기에, 수여선은 교통로가 바뀜에 따라 주변 지역은 어떻게 변화하여 왔는지에 흥미를 가진 이들이 일찍부터 주목하였던 노선이다.

김구현
2015년 현재, 22세이며, 수원에서도 멀지 않은 의왕 부곡동의 한국교통대학교(구 철도대학)에 재학하다가 현재는 군에서 복무중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과는 일절 무관한 철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된 이유는 철도교통이 단순한 운송수단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용자들의 의식 및 생활환경과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채로운 빛깔을 남겨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자취를 찾기 위하여 밖을 나서는 모든 활동이 곧 실지답사이고, 그 중에서도 수려선처럼 사라진 옛 기찻길을 탐색하는 일은 국내 철도사를 미시적 관점으로 파악하는 데 있어 유용한 도구이면서, 이를 바탕으로 더욱 높은 차원의 연구, 조사활동을 가능케 하는 기초가 되는 작업입니다. 또 굳이 거창한 의미를 들지 않아도, 옛 철길이 있던 자리에는 독특한 정취, 어느새 잔정이 깃들게 하는 풍경이 있고, 열차가 다니던 시절 길이 만들어내던 수많은 이야기가 잠들어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동시에 과거를 만나게 해주고, 단순히 미화된 추억을 뛰어넘어 어디를 향하는지 모를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길입니다. 그 매력을 알게 되어 지난 2009년부터 전국의 이러한 길들을 다니며 졸작으로나마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지리나 인문환경에도 흥미가 있어 산책이나 여행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생활에서는 단순함과 소박함을 추구하는 조용한 학생입니다.

* 수여선 답사기는 지면 사정상 축약되어 실린 점을 알려드리며, 각 구간별 자세한 내용은 수여선 답사기 블로그
   http://blog.naver.com/kgh19941061/220140170749 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